* 오늘 들은 작은 일화입니다. 제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따금 보게되는 건호씨의 지금 모습과도 많이 닿아있어 담아왔습니다.
때는 참여정부 시절, 유학 준비 중인 노대통령 아드님의 토플 과외 선생을 했습니다. 금액은 싯가보다 쌌습니다. 자산가 자녀의 토플 과외 비용에 비하면 세발의 피. 게다가 나중에 이력서에 넣고 이를 홍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로 치면 세자의 스승이 되는 명예로운 경험이라, 세월 지난 뒤 나중에 술자리에서 지인들에게 자랑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신촌에 있는 삼성아파트에서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첫날 가니 노대통령의 따님인 노정연씨도 계셨고, 이제 막 사시합격한 연수생 남편분도 뵐 수 있었습니다. 노정연씨는 토플 점수가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건호씨 수업에 꼽사리 껴서 몇번 같이 듣겠다고 하셔서 '잉? 구두쇠네. 그럼 금액이 늘어나야 하는데.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몇 주 과외가 진행되면서 여의도에 있는 아파트로 이동하여 수업이 계속되었고 신촌에서나 여의도에서나 경호원들이 안보여서 의아했습니다. '옆집에 진을 치면서 몰래 경호하는건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예 경호원들이 없구나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거 관련해서 직접 물어보는건 국가 몇급 기밀 쯤 되는걸 캐는 것같아 하지 않았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방 창문 열어놓고 같이 담배도 태우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몇가지 기억나는 게 있습니다.
당시 나는 던힐을 피웠는데 노건호씨는 에쎄인가, 국산담배를 피우길래 여쭤봤습니다.
"양담배가 맛있어도 어쩔수없이 국산 피우셔야겠네요?"
"아우, 국산도 맛있어요. 왠만하면 이걸로 바꾸세요."
"지금 엘쥐 다니시죠? 혹시 과장님이나 부장님이 대통령 아들이라고 질책해야되는 상황에서 질책도 못하고 하나요?"
"글쎄요. . 그런걸 크게 느끼진 못했는데 아무래도 있겠죠?'
"맞아요. 아무래도 당사자는 잘 느끼지 못할 수 있어요."
"근데 토플 라이팅 쓸 때요. . . "
"예."
"반드시 아까 말씀하신 그 틀대로 써야하나요?"
"예 그렇게 해야 제한시간 안에 빠르게 쓸 수 있어요."
토플 라이팅은 30분 안에 자신의 논리를 펴야되는 시험이라 생각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학원가에서는 '템플릿'을 만들어 수업을 합니다. 무슨 문제가 나와도 자신이 연습한 템플릿에 맞춰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 마을에 공장이 들어선다. 찬성이냐 반대냐?' => '몇몇 사람들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찬성 할 것이다. 하지만 난 반대다. 스트레스 유발하기 때문이고 공장 대신 공원같은 게 들어서야 마을 사람간의 인간관계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같이 공부하는 게 나은가 혼자 하는 게 나은가?' => 몇몇 사람들은 혼자하는 걸 좋아 할 수있다. 하지만 나는 같이 공부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이 스트레스도 풀고 인간관계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항상 진실만 이야기하는 게 나은가? => 아니다 가끔 거짓말도 해야 스트레스도 안 받고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이런 식으로, 무슨 문제가 나와도 자신이 준비한 스트레스와 인간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본문에서 펼칠 수 있습니다. 이런걸 '템플릿'이라고 합니다. 짧은 시간에 점수 내기 좋은 편법입니다. 요즘은 채점기준이 바뀌어서 이런 편법이 절대 안통합니다. (혹시나 지금 토플 준비하시는 분들 혹하지 마세요^^) 하지만 당시에는 이 기술로 제가 밥벌이를 했습니다.
"선생님, 도저히 어디에 맞춰서는 못 쓰겠어요."
"이렇게 편법으로라도 토플 빨리 졸업하시고 이걸로 남는 시간에 진정한 영어공부하세요."
"아뇨. 도저히 그렇게는 안 써져요. 제 생각이 아니니 전개도 안되고. . .'
"외워서 적용연습 조금만하면 점수 바로 나와요. 그것 때문에 제가 과외비를 받는겁니다."
"아뇨. 못 하겠어요."
"하하. . . 그렇게 말씀하시는 학생이 일년에 몇 명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는 형식은 갖추지만 내용은 자신의 것으로 쓰세요. 그럼 제가 문장과 논리 봐드릴게요.'
'와 감사합니다.'
몇 달 뒤 탄핵정국이 되어 유학이 연기되었고, 나중에 스탠포드에서 유학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노건호씨가 기사에 등장할 때마다 편법이 몸에 맞지 않아했던 몇 안되는 학생 중 하나로 기억에 납니다.
불법과 편법 사이 외줄타기를 하는 어느 여인과 그 밑에서 자란 딸이 써질러 놓은 글을 보며 예전 일이 대비되어 상기되네요.
dvd프라임 '목성'님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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