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짚모자
지난해 가을걷이 중에
"옛다!" 하는 봉하 인심이 내게 씌워준 밀짚모자
요사이 내 못간 동안
누구의 이마와 손을 거쳤는지
엊그제는 봉하 생태연못 한 쪽에
덩그러니 혼자 가부좌를 틀고 앉았더라는 소식이 왔네
내 머리 속엔 금세
정겹고 낯익은 용의자들의 얼굴로
뱅글뱅글 사발통문이 돌았는데
그래 너는 내 없는 뜨거운 오후
개똥이의 그늘이었거나
소똥이의 손부채였거나
말똥이의 큰 눈에
성글성글 맺힌 그리움이 되어
오월 봉하의 햇살을
맨 앞에서 독대하고 있었을 테지
그 옛날 어느 매서운 겨울밤
새봄 내일을 화톳불 삼아
손이 부르트게 새끼를 꼬던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말이지
밀짚모자는 눈 내리는 겨울에 만드는 거라며
지난해 가을걷이 중에
"옛다!" 하며 내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그님들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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