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가끔 어딘가 당신도 모르는 곳에 마음 흘리고
딴 사람 되어 돌아오시네
귀신처럼 기척 없이
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마루에 걸터앉아
신세를 돌아보시나 지나는 행인들의 걸음을 세시나
자글자글 깊어진 주름살만 씰룩씰룩
할머니, 들어오시쟎고 뭐하세요
내 말에는 대꾸도 없이 한 손으로 허공만 훠이
그리곤 보따리 하나를 털썩 내미시는게지
"다른 사람들한틴 말하면 안뒤야"
보따리가 화수분이냐
할머니 참 담은 것도 많아
저것은 어릴적 장판 밑에서 발견했던
그 곰팡이 냄새나는 쌈짓돈인가도 싶네
아버지가 드린 용돈
얼마나 몇 년이나 모아오셨나
누군가 버리고 간 종이박스와
거리에 널부러진 빈병 모으러
동네 곳곳 탑돌이도 열심이셨지
내 나이쯤 돼 뵈는 저 누더기 황색봉투는
젊었던 아버지의 것이었겠지
서툴지만 꼼꼼한 셈으로
할머니 쌈짓돈은 그렇게 불어갔네
주름살만큼이나 낡은 세월들
침 묻혀가며 하나씩 펴보다가
눈이 시려 몇 번이나 다시 세는데
어느틈에 또 다녀가시는 길인지
저만치 연분홍 치맛자락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