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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오늘 아침

by 멀리있는 빛 2010. 1. 13.


현숙씨.
비몽사몽간에 어찌어찌해서 광화문까지 잘 왔어요.
내려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방통위 건물 앞에서 백해무익한 담배 한 대를 물었지요.
담배에 불을 붙일 때부터 주변에 꽁초를 버릴 만한 곳이 있나 두리번 거렸어요.
요즘 서울 거리, 특히 광화문 앞은 쓰레기 없는(실은 살아있는 쓰레기들이 판을 치고 있지만) 곳이라 휴지통이 귀하거든요.
그래서 잠시 담배를 피우며 별거 아닌 고민을 하고 있었지요.

올 들어 가장 춥다는 오늘
꾸릴 수 있는 건 다 집어다 온몸을 칭칭 감싼
50 전후의 노숙자 아저씨 한분이 제 옆에 있었어요.
그 분은 어느 식당에서 공수해왔을 네모진 식용류 양철통에
불을 지피고 있었지요. 바로 옆에는 매트로인지 뭔지 오늘자 무가지 신문이 쌓여 있었고요.
또 그 옆에는 알바로 보이는 청년이 지하철 이용자들이 신문을 집어가기 좋게 반으로 접는 작업을 하고 있더군요.
노숙자 아저씨는 접힌 신문으로 불을 지피며 신문이 다 탈쯤이면 다시 청년쪽으로 가서 새 신문을 집어들고 왔지요.  
그런데 이상한 건, 한번에 꼭 신문 한 부만 가져오더라고요.

기다릴 때는 버스가 잘 오질 않아요.
덕분에 담배가 필터 앞까지 다 타들어 갔어요.
저 멀리 휴지통까지 가기는 싫었어요. 
다행스럽게도 꽁초 버리기 더없이 좋은 양철통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지요.  
전 다 타들어간 담배 꽁초를 반으로 접어 양철통에 던져넣고는
아저씨에게 따뜻한 국물 한그릇 사드시라고 오천원을 드렸어요. 

그러는 사이 버스가 왔어요. 아저씨는 잘 알 수 없는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아마 고맙다고 하는 것 같았어요.
나도 고마웠어요. 이런 아침에 맡는 신문지 타는 냄새가 얼마나 달콤한지 아실랑가요?
그리고 잠시였지만 불쬐는 재미도 쏠쏠했어요.

오천원 가지고 너무 생색내서 현숙씨한테 챙피해요. 
물론 현숙씨는 내 마음을 너무너무 잘 알테지만요.
오늘 하루 잘 살게요.
이따 밤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