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여러분을 찾아뵙는 것 같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치기 쉬운 계절, 무더운 여름 어떻게들 보내고 계십니까?
문득 슬픔과 절망으로 지새웠던 지난봄을 생각합니다. 300여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빌며 가슴 졸였던 날들, 하나둘 늘어나는 희생자와 오열하는 가족들을 보며 대통령님을 보내야만 했던 서러운 날들을 떠올렸습니다. 참담한 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마냥 맥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봄을 그냥 보내면 1년 농사가 수포로 돌아갈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추스려 조생종 벼 모내기를 하고 만생종 육묘도 시작했습니다. 논밭을 고르고 파종도 했습니다. 6월에는 마을부녀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다섯 번째 ‘노짱 캐릭터논 모내기’와 오리 농군 입식 행사를 치렀습니다.
“봉하들녘에 벼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여름 한가운데 와 있습니다. 지금 봉하에는 도심에서 볼 수 없는 갖가지 여름풍경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혹시 벼꽃을 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봉하들판의 조생종 벼가 어느새 출수(이삭이 나오는 것으로, 벼는 개화를 출수라고 함)와 수정에 접어들었습니다. 만생종은 다음 달 중순경에 벼꽃을 피우게 됩니다.
이삭대가 나오면 이삭마다 껍데기가 반으로 쪼개져 열리면서 6개의 하얀 작은 쌀 같은 게 삐죽 얼굴을 내밉니다. 바로 벼꽃의 ‘수술’입니다. 벼꽃은 암수한몸으로 암술 하나에 수술 6개가 2시간 정도(대략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경 까지) 짧은 시간에 피고, 곧바로 자가 수정된 뒤 이삭집을 닫아 버린답니다. 때문에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지나가기 십상입니다. 벼는 한 이삭대에 90~150개 정도 이삭이 달리는데, 논 전체적으로 꽃을 볼 수 있는 시기는 3일~5일 정도에 불과합니다.
벼꽃은 암수한몸이라 자가수분을 합니다. 수정 시기에 장마나 태풍 등 외부의 큰 충격이 없다면 저절로 혼자서도 잘 됩니다. 그래서 이 시기엔 농부들도 논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물론 방앗간의 일상은 여지없이 바쁘게 돌아가지요.
아래 사진 속에 긴호랑거미가 집을 짓고 먹이사냥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긴호랑거미는 벼 잎과 줄기 위쪽에 거미집을 짓고 이화명충나방이나 혹명나방 등 해충을 포획해서 잡아먹고 삽니다. 벼농사에 이로운, 익충이지요. 간혹 사람이 실수로 거미줄을 헤집거나 동물이나 곤충들이 거미줄을 자르게 되면 거미줄을 막 진동시켜서 위협적인 행동을 하기도 한답니다.
숨은 농군 ‘긴호랑거미’와 ‘늑대거미’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논바닥에는 늑대거미도 살고 있습니다. 늑대거미는 다른 거미들처럼 집을 짓고 살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벼의 기저부에 서식하며 벼즙을 빨아먹는 해충(벼멸구)을 잡아먹습니다. 늑대거미는 화학농약으로도 별 수 없는 벼멸구에겐 치명적인 천적곤충, 살아있는 농약인 셈입니다.
출수기에 들어선 조생종, 운광벼의 생육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봉하에서는 땅에 볏짚을 썰어 넣고 녹비나 퇴비 등을 주기 때문에 지력이 좋고, 덕분에 벼 작물이 튼실하게 잘 자랍니다. 평당 50주로 넓게 심어 통풍, 채광이 잘되어 이때쯤 발병하는 문고병, 도열병 등도 없습니다.
벌써 이앙초기와 출수 전 두 번에 걸쳐 미생물, 생물, 광물(미네랄) 등 영양액비와 친환경 유황, 친환경 오일, 돼지감자, 백두옹 등 천연농약을 혼용해서 광역살포기로 엽면 살포와 예방방제를 했습니다.
올해는 윤달이 들어 추석이 빠릅니다. 9월초, 추석 때 여러분 차례상에 햅쌀을 올려 드리려면 8월말에는 수확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바쁜데…김해지역의 경우 올 6월은 예년에 비해 평균온도가 1.5도 저온이었고 7월에도 2.5도 가량 낮아 출수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삭대가 나오고 벼꽃도 피는 등 자가수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즐거운 소식 하나 더 전할까요? 지난 늦겨울 일본에서 찾아온 황새가 이제는 아예 우리 봉하마을에 둥지를 틀고 위풍당당하게 터줏대감 행세를 합니다. 봉하의 새 명물로 손색이 없는 귀한 생명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우리와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삶이 더딘듯해도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갑니다. 겨울 지나 봄이 그랬던 것처럼, 무더운 이 계절도 머잖아 우리에게 선선한 가을 향기를 실어 보내줄 것입니다. 때맞춰 여러분께 햅쌀을 선보이려면 좀 더 땀 흘리고, 좀 더 부지런한 농군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올해로 봉하마을 친환경생태농업 일곱 번째 해입니다. 지난 7년간 봉하에 살면서 다시금 온몸으로 배우고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자연은 정직하다’는 것입니다. 노력한 만큼, 땀 흘린 만큼 우리에게 열매를 가져다주니까요. 자연과 함께 나누는 삶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추석 즈음해서 구수하고 넉넉한 봉하 소식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고 행복한 날들 보내시길 바랍니다. 늘 고맙습니다.
2014년 7월 23일 영농법인 (주)봉하마을 대표, 농군 김정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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