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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멸치똥

by 멀리있는 빛 2015. 1. 12.

멸치똥



똥이라 부르지 말자 
그 넓은 바다에서 
집채만한 고래와 상어와 
때깔도 좋은 열대어들 사이에서 
주눅들어 이리저리 눈치보며 
똥 빠지게 피해다녔으니 똥인들 남아 있겠느냐 
게다가 그물에 걸리어 세상 버틸 적에 똥마저 버텼을 터이니 
못처럼 짧게 야윈 몸속에 
딱히 이것을 똥이라 하지 말자 
바다 안에서도 밖에서도 
늘 잡아먹은 적 없이 잡아먹혀서 
어느 목숨에 빚진 적도 없으니 
똥이라 해서 구리겠느냐 
국물 우려낼 땐 이것을 발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물어 넣으면서 
멸치도 생선이냐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적마다 까맣게 타들어갔을 
목숨 가진 것의 배알이다 
배알도 없는 놈이라면 
그 똥이라고 부르는 그것을 뜯어낸 자리 
길고 가느다란 한 줄기 뼈가 있겠느냐 
밸도 없이 배알도 없이 속도 창시도 없이 
똥만 그득한 세상을 향하여 
그래도 멸치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등뼈 곧추세우며 
누누천년 지켜온 배알이다

                                                      - 복효근


2015년 1월 11일 부산 기장 대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