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에 들락거리다
몇번 스치며 어줍게 인사를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심호택 시인이다!'
마음이 발그레 그의 시어들로 들뜨기도 했습니다.
내게는 김치 같고 막걸리 같았던
그의 시들에 줄그어가며
나의 청춘도 이렇게 숙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출근길에 문득 생각이 나 그의 시를 찾다가
5년이 지난 부고 기사를 이제서야 발견합니다.
버스를 기다리다 식겁 움찔했지만
찬찬히 그의 시 몇편을 되돌아보기로 합니다.
봉 구 / 심호택
자네를 생각하면
마음의 형제라는 게 있거니 싶다
그 잘난 서당에도 못 다닌 자네
내가 글 읽을 때면
고드름 녹는 처마 밑에서
막가치로 땅바닥이나 후비면서 기다렸지
오직 나를
나하고 놀 수 있는 한참을
그리고 내 온갖 투정을 들으면서
연과 팽이와 썰매를 만들었지
우리 착한 봉구!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봐라, 저 애는 성내는 법이 없느니라
부디 본받거라
그런데 끝내 본받지 못하였지
내 멋대로 살았지
자네 집 있던 자리 유심히 보니
해바라기 몇 줄기 서 있더라만
나는 잊지 않는단다
그 쓸쓸하던 산야
찬바람 속에 우리들의 가오리연이 치솟던
생애의 절정이던 그 때를
심호택
(1947년 4월 12일 ~ 2010년 1월 30일)
민중의 삶을 시로 잘 녹여냈던 시인이다.
1991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빈자의 개〉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네 권을 펴냈으며 사후에 유고시집 한 권이 나왔다.
2010년 1월 30일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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