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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봉하 전문 포토그래퍼 ‘문고리’(봉7) 두 번째 개인전

by 멀리있는 빛 2014. 1. 16.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한 호흡으로는 읊조리기조차 벅찰 만큼 긴 이 제목은 2004, 그러니까 10년 전 봄에 개봉했던 로맨틱코미디 영화의 그것이다. 제목에서부터 떡하니 존재감을 드러내는 주인공 홍반장은 어느 바닷가마을의 청년 반장으로, 동네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도무지 모르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는 독특한 인물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 역시 배우 김주혁이 연기한 홍반장에 있다. 한미정상회담 동시통역관, 유명 가수의 보디가드를 맡았고, 단신으로 수영해 대서양을 건넜다는 등 변화무쌍한 삶의 전력에 정의감과 넓은 오지랖까지 갖춘 홍반장은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인물보다 인간적이고, 그러면서 우리들 주변에 꼭 한명쯤은 있을 것 같은 친근함을 갖고 있다.

 

노무현재단 전속 사진가? 방앗간 직원? 마을주민?

 

봉하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같은 사람이 있다. 노무현재단이 주최하는 봉하의 모든 행사는 물론, 춘하추동 절기에 관계없이 이어지는 친환경생태농업의 현장, 사람사는세상 회원들이 모이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나 골프카트를 타고 목에 카메라를 두른 그를 만날 수 있다. 대부분은 사진을 찍고 있을 때이지만, 방앗간 일을 돕거나 마을의 대소사에 함께하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누군가는 재단의 전속 사진작가로, 또 누군가는 그를 방앗간(영농법인 봉하마을) 직원으로 여긴다. 그냥 봉하마을 주민으로 아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로 봉하 포토그래퍼 문고리님이다.

 

문고리는 2002년부터 써온 닉네임이에요. ‘고리는 영남과 호남, 진보와 보수를 연결하자는 의미이고, 앞에 붙은 은 통로를 뜻해요. 사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뜻을 담았죠.”

 

봉하에 첫발을 디딘 2008년 전만 해도 40여 평생을 줄곧 고향 대구를 중심으로 살아온 문고리님이 봉하에서 이런 오해 아닌 오해를 받고 있는 까닭은 인간 노무현의 삶을 좇아온 지난 12년 세월 때문이다.

 

대통령님이 귀향하시면서 봉하 방문객들이 폭주하기 시작했잖아요. 일정이 바쁜 비서관들만으로는 사진촬영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그해 3월부터 사진을 좀 찍을 줄 아는 자원봉사자들이 봉하 찍사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저도 그중 하나(7)였고요. 초기엔 본가인 대구에서 생활하며 주말에만 봉하를 다녀가곤 했는데, 돌아가신 뒤에는 아예 봉하마을 근처에 거처를 정하고 봉하와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어요.”

  

2002년 광주경선에서 노무현을 향한 첫 셔터를 누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중 우연히 지인의 카메라에 매료되어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 무렵 마치 사진의 시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된 것처럼 삶의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노사모 회원들과 함께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광주경선 현장을 찾았다가 후보 노무현을 향해 삶의 첫 셔터를 누르게 된 것.

 

흔히들 대통령님의 정신과 신념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데, 저는 무엇보다 그분의 맑은 영혼에 반했습니다. 마음 한 편에 늘 동심을 갖고 계신 분이셨죠. 장난끼도 많으셨어요. 인권변호사 시절부터 드러난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와 사랑은 변치 않는 그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이라 봐요. 사진을 찍을 때도 늘 그러셨거든요. 당신보다 주변 사람들을 더 많이 배려하셨습니다. 그림은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릴 수 있지만 사진은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남길 수 없는 소중한 기록이잖아요. 후보 시절에도 그랬고, 고향에 돌아오신 뒤에도 쉽게 지나치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저절로 그 마음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저 역시 대통령님 사진보다 방문객이나 자원봉사자들을 더 많이 찍게 되었거든요. 대통령님 사진은 누구다 다 찍으려고 했으니까요.”

 

영화 <변호인>이 가져다준 선물나도 그와 함께해왔다

 

문고리님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진을 함께할 수 있도록 20127월부터 블로그 문고리’(http://bonghatown.tistory.com)를 운영하고 있다. 포스팅한 목록만 해도 1년 반 새 400개를 훌쩍 넘겼다. 지난해 겨울부터는 화포천의 자연생태계를 사진에 담는 작업에 매진중이다. 봉하 친환경 생태농업을 사진으로 정리하는 일도 겸한다. 농번기에 방앗간에 일손이 급하거나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를 빼고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화포천에 나가 시간을 보낸다. 요즘은 수천마리의 철새들과 애틋한 사진 순애보를 완성해가고 있다.

 

엊그제 모처럼 창원 시내에 나가 <변호인>을 보고 왔어요. 1천만 관객을 돌파한다죠?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슴 아프고, 분노하고, 슬픔과 격정이 일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를 사랑하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자부심도 들었어요. 제가 정식으로 대통령님을 모시거나 작가 타이틀을 걸고 사진을 찍어온 건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의 사진은 노짱님 곁을 벗어나본 적이 없으니까요. 사실 요즘 자신감을 잃고 종종 흔들릴 때가 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그런 마음을 훌훌 털 수 있게 되었습니다.”

 

4월 말까지 추모의집 전시실에서 두 번째 개인전“2002년 초심으로

 

지난 11일 노무현 대통령 추모의집에서 문고리님의 두 번째 전시 <문고리의 봉하마을 사계 사진전 :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가 개막되었다. 지난해 찍은 수만 장의 사진 가운데 엄선된 20편의 사진이 4월 말까지 봉하 방문객들과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봉하에 오래 있다 보니 어느새 저에게도 고정관념이 생겨있더라고요. 이 꽃은, 저 나무는 전에 한 번 찍었으니 소홀히 대하고,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된 거죠. 똑같은 나무와 꽃도 시간과 바람이라는 시련을 겪고 조금씩 더 자라나잖아요. 사람 앞에, 자연 앞에 똑같은 사진이란 없는 건데 그걸 제가 잊고 지냈던 거죠.

 

제 좌우명이기도 한데, 예전에 명짱님께서 기거하시던 곳 현관문에 가난하더라도 비굴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오만한 자만이 이 문으로 들어올 수 있다는 문구를 친필로 써 붙여 놓은 적이 있어요. 다시금 새겨볼 때라 생각해요. 올해부터는 2002년 그날의 초심으로 돌아가 사진을 찍으려고 합니다. 제가 더 이상 봉하 사진을 찍지 않아도 되는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고 이 작업을 계속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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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의 봉하마을 사계 사진전 : 좋은 바람이 불면 당신인 줄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