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전화가 왔다. 수화기로 찌든 술냄새가 풍겨왔다.
"여기 안양인데, 나와라"
"늦었다. 이 시간에 어떻게 안양까지 가냐"
"담임도 있고, 애들도 모여있어. 나와라. 여기 끝내줘"
"초장에 전화하지. 내가 지금 가서 뭐하냐..내가 술안주냐. 왜 안주 떨어질 시간에만 전화해..."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을 못하고 되도 않는 핑계와 짜증을 섞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나 술취한 김에 욕 좀 한다. 옛정을 생각해서 나와"
참았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딴에는 이유없는 짜증에 나만큼 화가 났을 것이다.
그때 수화기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선생님이다. 오랜만에 한 잔해야지..나와라.."
친구 녀석에게 차마 못했던 말이 기어코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싫어요!"
차가운 한마디가 다시 차가운 한마디로 돌아왔다.
"알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우리 전생에 무슨 원수도 아니었는데
아니, 누가 보면 부모 같고, 누가 보면 형제 같고, 누가 보면 친구 연인 같았던 우리는
뭐 모르는 이가 들었으면 간첩들의 접선이라고 여길듯한
"싫어요" "알았다" 단 두 마디로
통화를 끝냈다.
옛정을 생각해서...옛 정을 생각해서...
그 말만은 하지 말지.
그 옛정 때문에 내가 나가지 못한다는걸 모르는구나.
너희들은...당신은...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첫눈이 오는구나....."
정일근의 가슴저린 시를 읊어주던 당신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한 데 모아 양동이 통째로
통일밥을 비벼주던 당신이
달력마다 빨간 동그라미 그려가며
우리들의 생일마다 미역국 대신 막걸리를 따라주던 당신이
끌려가던 동료들을 바라보며 입술 깨물고 울던 당신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던 우리들의 밀실에서 지금
돈많은 집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십인지 수백인지
부모의 주머니사정과 무개념 지수에 따라 값이 바뀌는 얼마짜리 불법과외를 하며
일류대학 저 높고 현기증 나는 고지를 향해 진군 또 진군!을 외치는 당신과
내 결혼식에 와서 미안해서였는지 무서워서였는지
도둑시선으로 서성이다 수인사도 없이 가버린 당신과
출세한 제자들과 룸사롱에 오손도손 앉아
나이 어린 아가씨의 허벅지에 씨바스리갈을 흘리고 있는 당신과
자꾸 오버랩됩니다.
당신은 제게 3인칭이 아니었습니다.
옛 정을 생각해서
저는 나갈 수 없습니다.
보고 싶은 선생님....
"여기 안양인데, 나와라"
"늦었다. 이 시간에 어떻게 안양까지 가냐"
"담임도 있고, 애들도 모여있어. 나와라. 여기 끝내줘"
"초장에 전화하지. 내가 지금 가서 뭐하냐..내가 술안주냐. 왜 안주 떨어질 시간에만 전화해..."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차마 말을 못하고 되도 않는 핑계와 짜증을 섞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비싸게 굴어. 나 술취한 김에 욕 좀 한다. 옛정을 생각해서 나와"
참았던 화가 치밀어 올랐다.
녀석 딴에는 이유없는 짜증에 나만큼 화가 났을 것이다.
그때 수화기로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선생님이다. 오랜만에 한 잔해야지..나와라.."
친구 녀석에게 차마 못했던 말이 기어코 목구멍을 치고 올라왔다.
"싫어요!"
차가운 한마디가 다시 차가운 한마디로 돌아왔다.
"알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우리는 전화를 끊었다.
우리 전생에 무슨 원수도 아니었는데
아니, 누가 보면 부모 같고, 누가 보면 형제 같고, 누가 보면 친구 연인 같았던 우리는
뭐 모르는 이가 들었으면 간첩들의 접선이라고 여길듯한
"싫어요" "알았다" 단 두 마디로
통화를 끝냈다.
옛정을 생각해서...옛 정을 생각해서...
그 말만은 하지 말지.
그 옛정 때문에 내가 나가지 못한다는걸 모르는구나.
너희들은...당신은...
"잠시 교과서를 덮어라. 첫눈이 오는구나....."
정일근의 가슴저린 시를 읊어주던 당신이
아이들의 도시락을 한 데 모아 양동이 통째로
통일밥을 비벼주던 당신이
달력마다 빨간 동그라미 그려가며
우리들의 생일마다 미역국 대신 막걸리를 따라주던 당신이
끌려가던 동료들을 바라보며 입술 깨물고 울던 당신이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던 우리들의 밀실에서 지금
돈많은 집 아이들을 모아놓고 수십인지 수백인지
부모의 주머니사정과 무개념 지수에 따라 값이 바뀌는 얼마짜리 불법과외를 하며
일류대학 저 높고 현기증 나는 고지를 향해 진군 또 진군!을 외치는 당신과
내 결혼식에 와서 미안해서였는지 무서워서였는지
도둑시선으로 서성이다 수인사도 없이 가버린 당신과
출세한 제자들과 룸사롱에 오손도손 앉아
나이 어린 아가씨의 허벅지에 씨바스리갈을 흘리고 있는 당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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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정을 생각해서
저는 나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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