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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초짜, 뮤직비디오를 만들다

by 멀리있는 빛 2006. 12. 22.
 

초짜, 뮤직비디오를 만들다!




요즘 UCC 동영상으로 온 인터넷이 분주합니다. 웬만한 휴대폰에는 카메라가 다 달려있고, 대부분의 블로그 사이트들이 동영상 업로드를 서비스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자기 손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죠. UCC 동영상이 많이 쏟아지다보니 뉴스나 쇼프로 같은 방송 내용을 편집해 대~충 만들어 올리면 ‘쀍’소리 듣기 십상이죠. ‘펌질 끝! 이제 내손으로 만들자!’가 요즘의 대세입니다. 2007년에는 전문가 수준의 UCC인 ‘PCC’(proteur created contents) 동영상이 유행할 거라는 얘기가 들립니다. 저도 가끔씩 블로그에 두 살 난 딸아이 모습을 찍어 올리곤 하는데, 이건 가족들 외에는 영 보여주기도 창피한 수준입니다.

얼마 전 새 블로그도 하나 만들었고, 마침 예전에 제가 만들었던 것 중에 PCC라고 할만한(제 입으로 이렇게 말하니 좀 그렇군요) 동영상이 있어서 소개 좀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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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rever time "


‘안되면 되게 하라~ 무적 초짜 용사들!’

2001년 한창 뜨겁던 여름이었습니다. 대학 4년을 공부와 담쌓고 술과 영화, 음악 동아리에 빠져 지낸 터라 전공 살려 취직하기는 틀려먹었고, 졸업을 하고도 별다른 직업 없이 허울 좋은 프리랜서로 몇 년을 보내고 있을 때였죠. 먹고는 살아야겠기에 간간히 메이저 음악사에서 히트 곡 없는 음반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 마침 아는 분이 신인 아이돌 그룹을 데리고 작은 기획사 하나를 차렸습니다. 없는 살림에 어떻게 해서 음반을 내기는 했는데, 돈도 없고 빽도 없는 작은 기획사이다보니 함께 일하는 몇 사람이 일당백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야만 했죠.

2001년은 가수들의 홈페이지 만들기가 유행이었습니다. 신인가수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작업이었죠. 요즘 같았으면 블로그 하나만 잘 관리해도 하루아침에 스타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때 제가 일하던 기획사는 몇 백만 원짜리 허접한(?) 홈페이지와 카페가 유일한 홍보의 수단이었습니다. 가요 프로 한번 나가는 데 500만 원은 기본이던 시절이죠. ‘안되면 되게 하라’는 무대뽀 정신으로 여기저기 일일이 글도 옮겨 나르고, 틈틈이 동영상도 만들어 올렸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아무데나 별다른 수고 없이 쉭쉭 올리는 편한 시스템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저와 동료들 대부분이 컴맹이었기 때문에 마치 가나다 배우면서 소설 쓰는 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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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썼던 소니 ‘VX2000’.

어쨌든, 다시 2001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하드코어 스타일의 강렬한 타이틀곡으로 어느 정도 이름도 알렸고, 여름이니 신나는 댄스곡으로 굳히기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에 후속곡 준비로 바쁠 때였습니다. 워낙 돈이 없다보니 뮤직비디오 하나 새로 찍을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마침 제 친구가 결혼식 축하 비디오 사업을 막 시작할 때여서 좀 어설프지만 친구의 장비를 가지고 독립영화 찍는 셈으로 뮤직비디오를 찍기로 했습니다. 며칠 뒤 동생들(아이돌 그릅)이 부산에서 1박2일 동안 ‘호기심천국’이라는 프로그램의 야외녹화 스케줄이 있었습니다. 여름이고 하니 뮤직비디오는 역시 바다! 이것저것 잴 틈도 없었기 때문에 바로 부산을 촬영장소로 정했죠.

출발 전날 밤 친구(캠코더 주인)와 호프집에 모여 2시간 동안 말도 안 되는 콘티를 짜고 다음날 숙취에 찌든 채로 부산행 승합차에 올랐습니다.


간단한 콘티를 준비, 립싱크는 10번 이상 찍는다

일부러 포커스를 흐리게 조정하는 것도 괜찮은 표현방법입니다. 대중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캠코더는 소니의 ‘VX2000’이었습니다. 당시 아마추어 VJ들에게 최고 인기 캠코더였는데(그때 아마 500만 원 정도 했던 거 같습니다), 우리가 가진 장비 중에서는 제일 좋은 물건이었습니다. 일정이 워낙 짧았고 방송 중간에 짬짬이 찍어야했기 때문에 20만 원짜리 중고 캠코더 하나를 더 챙겨서 두 개로 번갈아가면서 찍었습니다. 1박2일 동안 120분짜리 6mm 테입 2개 반 분량을 찍었습니다. 에피소드가 정말 많았는데, 너무 길어질 거 같아 아쉽지만 생략합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허접한 메이킹 팁을 글로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뮤직비디오 촬영의 가장 기본은 콘티와 립싱크입니다. 콘티는 전문가들이 아니면 계획한 대로 써먹기가 영 곤란하니, 그저 촬영을 위한 대략적인 줄거리만 잡아 놓으면 됩니다. 간간히 눈길을 끌 수 있는 장면을 미리 설정해두면 요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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립싱크 영상은 지루해보이기 쉬우므로 컷을 여러 개로 분할해 붙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 각도의 앵글과 뮤직비디오다운 빠른 편집을 위해서는 립싱크를 최소 열 번은 찍어야합니다. 물론 장소도 여러 곳을 골라 찍어야죠. 저는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바닷가에서, 백화점에서, 심지어는 샤워장에서도 찍었습니다(-.-;). 립싱크를 충분히 찍었다면 그 다음은 역동적인 영상을 위해 헨드헬드 기법을 씁니다. 일반인들은 당연히 헨드헬드 장비가 없을테니 손에 들고 걷거나, 뛰면서 찍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건 현장감은 좋은데 화면이 너무 흔들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급한 대로 제가 쓴 방법은 자전거 뒤에 앉거나 승합차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립싱크하는 동생들의 주위를 맴돌면서 찍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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갖가지 영상표현을 위해서 제가 썼던 ‘자동차 바닥에 누워 차 돌리며 찍기’ 기법입니다. 동영상으로 보면 알 수 있지만 꽤 우아한 움직임이 표현됩니다.


영화에서 배우들 주위에 레일을 깔고, 그 위를 미끄러지듯 찍는 것을 생각하면 될 겁니다. 전문가라면 ‘지미집’(Jimmy Jib)이라는 크레인으로 훨씬 멋있는 영상을 만들겠지만 아마추어에게는 그림의 떡이니, 정 쓰고 싶다면 긴 막대 끝에 카메라를 달아서 찍어도 됩니다. 화면을 보면서 찍을 수 없어 시행착오가 많은 게 흠이지만 이것 역시 1천 원으로 1억 원짜리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찍을 때는 좀 웃기지만 촬영된 것을 보면 꽤 그럴듯하답니다. 나머지는 클로즈업이나 화면초점 흐리기 등 잔재미를 주는 기법을 씁니다. 사소하지만 편집할 때 유용합니다. 뮤직비디오는 한 장면을 3초 이상 보여주면 지루해집니다. 때문에 몇 초짜리라도 재미있는 그림이 될만한 것은 많이 찍어두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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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포커스를 흐리게 조정하는 것도 괜찮은 표현방법입니다. 대중가수들의 뮤직비디오에서도 자주 쓰입니다.



한 컷은 3~4초 이내로, 효과는 4~5개로 충분

촬영이 끝났으면 이제 편집 과정입니다. 요즘은 그래픽카드나 메인보드에 dvi 단자가 달려있어 프로그램만 깔면 바로 6mm 테입에 담긴 영상을 PC로 옮길 수 있다지만 당시 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변환이 모두 가능한 피나클 DV500 캡처보드를 썼습니다. 이것도 당시에는 150만 원이나 했답니다. 전부 공짜로 썼으니 이래저래 친구 덕을 톡톡히 봤죠. 지금은 싸고 좋은 제품들이 많으니 ‘검색찬스’를 써 보면 훨씬 수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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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나클 DV500’. 아나로그와 디지털 변환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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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리미어 6.0’은 TV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웬만한 효과를 거의 다 낼 수 있습니다.


필름에 담긴 영상을 PC로 옮겼으면 이제 본격적인 편집에 들어갑니다. 저는 캡처보드에 번들로 들어있던 ‘프리미어 6.0’으로 편집했습니다. 조금 복잡하긴 하지만 몇 번만 써보면 편집에 필요한 기본 기술은 금방 익힐 수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촬영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편집입니다. 아무리 좋은 소스를 가지고 있어도 편집을 제대로 못하면 걸작이 졸작 되는 건 순식간입니다. 대부분 전문적인 식견이나 노하우가 없으니 그저 ‘들이대는’ 식으로 짜 맞출 수밖에 없지만 영화 한 두 편, 혹은 전문가의 뮤직비디오 몇 개를 미리 봐두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프리미어에는 화면효과가 굉장히 많이 들어있는데, 효과는 메인으로 4~5개 정도만 골라 쓰는 게 좋습니다. 효과 자체는 멋있어도 영상에 섞이면 어울리지 않는 게 많고, 너무 많이 넣으면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사진을 넣는 것도 좋고, 휴대폰으로 찍은 다른 영상을 섞어도 좋습니다. 한 화면에서 여러 가지 느낌을 줄 수 있거든요.

편집이 끝날 즈음에 친구가 “명색이 뮤직비디오인데 그럴싸한 스튜디오 장면 하나 넣어야하지 않겠어?”하더군요. 스튜디오는 제 힘으로 불가능한 부분이라 궁여지책으로 동생들이 TV에 출연했을 때 노래 부르는 장면을 몇 개 따서 집어넣었습니다. 이건 저작권이 걸린 영상이라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사소한 부분은 대개 그냥 넘어가주지만 이 부분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겉멋을 좀 주고 싶어서 4:3으로 찍은 영상 위아래에 레터박스를 넣어 화면비율이 16:9인 것처럼 꼼수를 썼습니다. 재주가 좀더 있었다면 아예 레터박스 부분을 자르고 아나몰픽으로 만들어 완전한 16:9 영상을 만들었을 텐데 이점이 아쉽습니다. 와이드 TV로 보면 화면이 양옆으로 늘어져 보여 애초에 의도했던 겉멋이 영 살아나질 않습니다.

자, 이렇게 해서 저와 친구의 첫 번째 뮤직비디오 한 편이 완성되었답니다. 기획사 홈페이지에만 걸어놓았었기 때문에 팬클럽 친구들 말고는 본 사람이 거의 없지만 나름대로 칭찬도 많이 받은 아끼는 작품(?)입니다. 지금은 동생들이 가수 활동을 접은 상태고 홈페이지도 폐쇄되었기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만,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망신을 각오하고 제 블로그에 올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블로그에 올리려면 몇 가지 과정이 더 필요합니다. 티스토리는 한 번에 100MB까지 동영상을 올릴 수 있습니다. DVD용으로 만들었던 영상이라 용량이 1GB가 넘기 때문에 새로 변환이 필요했습니다. ‘바닥’ 프로그램으로 최대한 영상과 소리의 퀄리티를 살리는 범위에서 줄였는데 112MB나 되더군요. 다시 화면 비트레이트 수를 조금 줄여 81MB로 만들었습니다. 음성과 영상 싱크가 약간 엇나간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제 닉네임과 e-메일 주소가 담긴 워너마크를 ‘꽝!’ 찍고 끝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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