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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그 사람이 늙는다

by 멀리있는 빛 2008. 9. 11.


그 사람이 늙는다


                                      - 멀리있는 빛

사랑이란 말에 때때로 서글퍼지는 일은
너덜너덜해진 옛 편지를 문득 꺼내 읽거나
이미 없어져버린 장소며 연락처를 여전히 외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사랑하노라가 유언이 되어도 좋다고
수많은 손가락 걸곤 했지만
어느날부터 우리는 가롯 유다처럼
거울 앞에서조차도 그대라는 이름을 부인하곤 했다.
돌아볼 때마다, 사랑은
서로의 뺨 부비고 입 맞추던 시절에서 멀어져
장롱 속  어딘가에서 스멀스멀 몸을 키우는 곰팡이처럼
허파와 심장과 시간에까지 파고들어 우리를 병들게 했다

사랑도 삶의 하나라
꽃이 피는 것처럼 지는 날이 있으련만
그 뒷모습에는 그리움이 피더니
그리움이 질 때는 바람도 더는 불지 않더라

세월 밖에서 이따금씩 어렴풋이 재회한 사람
가고 오고 가고 가고
내 마음 속에서 조금씩
그 사람이 늙는다
그 사랑이 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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