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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사표와 아버지와 나

by 멀리있는 빛 2008.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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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첫날...마음 속에 품었던 사표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
섣부른 일기예보처럼 마음이 오락가락 하는 사이
오전 일과가 끝이 난다.

문득 "산다는 게 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살다보면 또 어떻게든 살게 돼"
무너져가는 처마 밑에서 홀로 저녁끼니 감자를 씻던 구룡마을의 어느 할머니 말이 떠오른다.

아버지...20대 중반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 꿈 심고 희망 다져 외길 걷기 삼십수년.
우리집 가훈은...60~70년대를 산 사람들이 마치 최면처럼 머릿속에 이고 다녔던
정직, 근면, 성실이었다.
삼십수년을 정직, 근면, 성실하게
자식들이 어떻게 커가는지 곁눈질할 틈도 없이
뻐꾸기 시계의 근위병처럼 이른아침 6시 출근, 밤 8시 퇴근으로
영화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처럼 살았던 아버지.
출근시간이 이르고 잔업이나 회식이 잦았던 탓에
아버지 얼굴을 못보고 지난 날도 많았다.

어느새 나는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고
아버지는 당신도 모르는 사이 할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와 20~30대를 함께 보낸 동료들 중에
몇은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거나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고 있었고
회사에 남은 사람은
가끔 어머니와의 대화속에 등장하는
'김아무개' '박아무개' 등 두어명이 전부였다.
그러던 어느날, 강철심지의 동료이자 신뢰의 근간이었던
회사 오너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한달이 채 넘기 전에 막 마흔 문턱을 넘은 그의 젊은 아들이 사장 자리를 꿰차고 들어왔다. 젊은 사장은 취임식도 하기 전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 몰아내기부터 시작했다.
안하무인인 풋사장에게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조석으로 들으며
그의 손짓 하나, 말끝 하나에
10년차, 20년차, 30년차 직원들이 밀려가거나 혹은 알아서 회사를 나갔다.

"흔들리지 말고 당당하게 행동하세요 아버지."
함께 젊음을 불살랐던 고락의 동료들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을 즈음
위로랍시고 내가 아버지에게 한 말이다.
그때 아버지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이듬해 1월, 아버지는 사칙으로 보장된 정년을 한숨으로 묻고
회사를 나오셨다. 
입사 후 35년여만의 일이다.
아버지는 몇달 뒤 자그마한 건축자재대리점 직원으로
생애 두번째 취직을 하셨다.  

한평생 아버지를 아버지이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여전히 그렇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아버지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가 꿈에 대해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나?
내가 여쭤본 적이 있었나?
이런....기억이 안난다.

아버지처럼 곧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는 나
하지만 나는 아직 나를 아버지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신념보다 높은 곳에 두었던 꿈이
이제는 그런게 있었는지조차 헷갈리는 요즘
내게 사표는 절망일까,
두려움 때문에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희망일까?


서른 일곱의 나...마음 속에 품었던 사표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
생각이 여전히 천둥벌거숭이다.
무심히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발견한
한 장의 그림이
오늘은 감동의 눈물로 흐르지 않고
깊은 한숨으로 자꾸만 내려앉는다.


                                                                - 2008년 8월 1일 멀리있는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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