듬성 듬성 빈자리가 몇개 보이는 한적한 버스 안입니다.
운전석 뒤쪽에 앉아 좌우로 스치는 풍경을 살피는데
뒷문 앞쪽에 수수한 작업복 차림의 그 분이 앉아 계십니다.
얼굴은 대통령 당선 전인듯 약간 젊어보이셨고
옷은 봉하에서 즐겨입으시던 차림 그대로입니다.
'이건 꿈이야, 이건 꿈이라고.....'
꿈속에서조차 꿈이란 걸 깨닫고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밀려오는 서러움...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합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흔들흔들 겨우 넘어지지 않고 님에게 달려가
넙죽 인사를 합니다.
말이 떨어지지 않아 뭐라 중얼거리듯 겨우 몇마디를 하는데
어깨를 토닥토닥 하시며 웃으십니다.
"괜찮아, 괜찮아.."
버스가 멈추고 뒷문이 열립니다.
버스에서 내려 어딘지 모를 동네길을 함께 걷습니다.
눈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꿔놓는 꿈의 장난에 당할까 두려워
이 순간, 행여 누군가 우리를 떼어놓을까 무서워
님의 손에 깍지를 끼고 팔장까지 걸어 함께 걷습니다.
그 마음을 아셨는지 "괜찮아, 괜찮아.."하시면서도 잡은 손을 꼭 쥐어주십니다.
우리는 근처에 있는 전통찻집에 들어가
도톰한 비단 방석을 나눠 깔고 앉아 차를 마십니다.
님은 내 사는 이야기, 속마음이 어떤지 몇마디 물으시고는
그냥 말없이 웃으십니다.
나는 한쪽에 내려놓은 가방 속을 열심히 뒤지기 시작합니다.
'아, 뭔가 좋은 걸 드리고 싶은데, 그게 어디 있지...'
전부터 만나 뵈면 꼭 드려야지 했던게 있었는데
도무지 그게 보이질 않습니다. 아니 그게 뭐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경황없이 서두는 와중에 곁눈질로 님의 시선을 살피는데
아......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세상을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듬직했던 님의 모습이 간데 없고
휑하니 텅빈 허공과 맞딱뜨립니다.
따뜻한 차가 여전히 모락모락 온기를 피워내고
주인 없는 방석에는 미처 함께 떠나지 못한 그분의 체온이 남아 있습니다.
쿵...쿵...커다란 눈물 몇방울을 떨어뜨리고
나는 잠에서 깹니다.
고맙습니다.
생전에 찾아뵙지 못해 늘 죄스럽고 한스러워하는 이놈인데
이따금씩 이렇게 찾아와 위로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음에 다시 뵐 때까지 열심히 살겠습니다.
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詩/이동원 노래-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 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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