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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노무현의 품에서 만난 “참 좋은 인연”

by 멀리있는 빛 2014. 6. 25.

2013년 겨울 노무현재단 회원소식지 '사람 사는 세상'에 썼던 글입니다. 올해 분재교실이 새로 문을 열어 겸사겸사 올립니다.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와 이순영 전 함평농업기술센터 소장과 함께한 봉하 이야기입니다.

 


노무현의 품에서 만난 참 좋은 인연입니다

바보를 사랑한 두 바보의 봉하 추일서정(秋日抒情)’

 

사람 사는 세상 회원들은 모두가 노무현이란 이름으로 맺어진 인연들이다. 나이도, 성별도, 지역도, 환경도 저마다 다르지만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한결 같은 그 속내에 마음이 든든하고 따뜻해질 때가 많다. 민주주의를 향한 신념이나 염원, 원칙과 상식, 평화, 평등, 자연, 사람저마다 꿈꿔왔던 수많은 가치들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촘촘하게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 아니, 이런 거창한 수식들은 제쳐두고서라도 사람냄새 진하게 나는 이들과 인연이 되어 서로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참 귀하고 고마운 일이다.

 

볕이 참 좋았던 10월의 마지막 날, 가을 봉하를 함께 거닌 두 주인공도 이러한 인연으로 맺어졌다. 봉하 친환경 생태농업을 이끌고 있는 김정호 영농법인 ()봉하마을 대표와 이순영 전 함평농업기술센터 소장, 두 사람은 노무현-봉하-친환경을 향한 무언의 도원결의로 자연스레 벗이 된 사이다.

 

한 사람, 그리고 두 사람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으로 청년 시절을 보낸 뒤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관으로 노 대통령을 보좌한 김 대표는 대통령의 귀향과 함께 지척인 부산의 가족을 놔두고 봉하에 터를 잡아 6년째 농군으로 살고 있다. 이 소장 역시 노 대통령과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6년째 매달 두어 번씩 전남 함평에서 봉하를 오간다. 한 번 왕복에 500km가 훌쩍 넘으니 그동안 오간 걸 합치면 지구 한 바퀴를 돌고도 남는다.

 

아이구야 대표님, 오늘은 내가 쪼까 늦어부렀네잉.”

어서 오이소. 맨날 그리 댕긴다고 고생 많습니더, 행님!”

 

전라도 형님과 경상도 아우의 주름 많은 흙손이 반갑게 악수를 한다. ‘2013 봉하 국화분재 전시회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 소장이 다시 봉하를 찾았다. 미리 약속을 받아놓긴 했지만 밤낮없이 바쁜 추수철이고, 국화분재 전시도 코앞이라 인터뷰를 한답시고 큰 일꾼 두 사람의 손발을 붙들게 되어 미안했다. 오랜만에 봉하산책이나 좀 하자고 에둘러 말했다. 마음을 읽었는지 이 소장이 먼저 덕분에 오랜만에 봉하구경 실컷 하겄네하며 언제나처럼 넉살 좋은 웃음으로 받는다. “그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볼까요?” 김 대표가 뒷짐걸음으로 앞장을 선다.



분재실에서 출발해 방앗간, 봉하밥상(봉하 친환경 농산물 가게), 추모의집을 거쳐 노란 바람개비들이 줄지어 돌아가는 길을 따라 생태연못으로 들어섰다. 다양한 논습지 생물들을 비롯해 갖가지 계절꽃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봄에는 개양귀비, 샤스타데이지, 수레국화, 갓 등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백접초, 금계국, 노란꽃창포, 까치수염, 수련, 연꽃, 원추리 따위가 자태를 뽐낸다. 요맘때는 공작초, 국화, 개미취, 털머위, 코스모스가 많다. 운 좋게 오늘은 전에 보기 힘들었던 가시연도 눈에 띈다. 걸음을 멈춘 김에 우리는 바로 옆 2정자에 다리품을 접고 앉기로 했다.

 

이순영과 함평과 노무현

 

대통령님 따라 처음 봉하에 내려왔을 때는 여기저기가 황무지나 다름없던 기라, 일을 시작할 때는 이걸 다 어떻게 손보나 했었는데, 하니까 또 되데요?(웃음) 그러고 보니 행님이 함평군수 대동하고 봉하에 처음 왔던 기도 고맘때인기라. 반바지 차림에 흙탕물 범벅이 돼서 수련 심는다꼬 애 마이 썼지요.”

, 그려요. 정확히는 2008627일이여. 대통령님을 세 번째인가 뵈었을 때인데. 우리 일하는 거 보러 오셔서 고생한다고 막걸리도 막 따라주시고 그랬당께. 나가 봉하에 이리 댕기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제.”



이 소장은 1974년 나주 남평의 농촌지도소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해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1986년 함평군이 화훼 육성사업을 시작하면서 꽃단지 기술지도사로 함평으로 스카우트되었다. 그 후 23년 동안 살기 좋은 농촌 만들기, 친환경 농업 육성에 앞장서 일했는데, 유명한 함평나비축제’, ‘대한민국 국향대전등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되고 발전된 지역축제들이다. 이 공로로 1989년엔 한국농업기술자협회에서 농촌지도사 공무원에게 주는 봉사상을 받았고(이 상은 매년 9000명의 농촌지도사 중 단 1명에게만 준다), 1999년에는 심형래 씨 등과 함께 제1호 신지식인에 뽑히기도 했다.

 

나도 글고 우리 함평이 노무현 대통령님과 인연이 각별했잖에. 2006년엔가 함평에 폭설이 내렸을 때는 피해농민 돌보신다고 직접 내려오셨고, 퇴임하신 그해에도 세계나비곤충엑스포하고 봉하 생태마을 조성사업 건으로 두 번이나 댕겨가셨지. 오두마을에 있는 황토와 들꽃세상에 오셨을 때 국화밭을 보면서 그러셨어. ‘어릴 적 고향에 있는 야생국화밭이 생각난다며 가을에 다시 방문하시겠다고. 그란디 이후에는 뵙지를 못했네그려.”

 

불행히도 그 다음 재회는 노 대통령의 서거 안장식 때 이뤄졌다. 이 소장은 함평 나비들을 띄워 보내는 것으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했다. 이후에도 매년 봉하 추도식에는 함평나비가 노 대통령의 넋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호와 노무현과 문재인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어느새 오후 5. 입동이 가까워서인지 벌써부터 서녘 하늘이 검붉게 달아올라 있다. “이런 날 봉화산에 올라서 보는 일몰이야말로 일품이라며 김 대표가 걸음을 재촉한다. 놀랍게도 이 소장은 사자바위에 오르는 게 이번이 처음이란다. 하긴, 내가 아는 그는 늘 유쾌하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할뿐 온단 말 간단 말없이 그저 조용히 다녀가는 사람이다.

 

정토원을 거쳐 사자바위까지 단걸음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는 순간 천하를 한 폭에 담아 펼친 듯 시야가 넓다. 들녘과 묘역, 마을, 뱀산, 화포천, 주변마을, 낙동강과 이어진 무척산 줄기들, 때마침 더해진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그 풍경에 화룡점정을 한다. 생전에 노 대통령이 손님들이 올 때마다 고향을 그토록 자랑했던 까닭을 다시 알겠다. 이내 모두의 시선이 황금들녘에 고정된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추수를 목전에 둔 캐릭터논에 대통령의 어록이 바람을 타고 강물처럼 일렁이고 있다. 세찬 바람 탓이었는지 석양이 담긴 김 대표의 눈빛이 엷게 젖은 듯하다.

 

대통령님을 처음 뵌 게 1984년이었으니 올해로 딱 30년째네. 대학 다닐 땐데, 운동하다가 구속되는 바람에 변호사와 의뢰인으로 첫 인연을 맺었지. 부산에선 이미 인권변호사로 꽤 유명하셨다고. 문재인 실장님도 그때 첨 뵈었는데 대통령님 대신 내한테 접견을 오신기라. 답답한 데 갇혀있지 말고 우선은 반성문 쓰고 나오는 게 어떠냐고 하시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반성문을 쓰냐꼬, 오히려 내가 성을 내다시피했다니까.(웃음) 워낙 혈기왕성할 때였으니까. 그때는 대통령님도 문 실장님도 참 젊으셨는데.”

 

이후 김 대표는 노 대통령과 부산민주시민협의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함께했다. 결혼식 때도 노 대통령이 주례를 맡아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인연이 모인 곳, 봉하

 

봉하가 이렇게 달라진 걸 대통령님이 보시면 아주 좋아하실 낀데. 사람들이 대통령님 없이 혼자 농사를 이어가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종종 물어요. 대통령님과 인연 맺은 거, 봉하에 사는 게 나는 짐을 지고 가는 거라 생각하지 않아. 작게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봉하를 만드는 일이고, 결국엔 당신께서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을 조금씩 완성해가는 거니까. 내한테 그런 기회를 주신 셈이니 오히려 고마운 일 아이겠습니까.”

 

친환경 생태농업 6년차인 올해 봉하마을은 44만평 농지에 900여 톤의 친환경쌀을 수확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시작한 첫해와 비교하면 18배나 커진 규모다. 물론 내실도 차근차근 다져나가고 있다. 올봄엔 친환경복합가공센터와 친환경바이오센터를 세워 다양한 상품개발에 나섰고, 10월에는 경남도에서 주는 친환경 생태농업 대상도 탔다.

 

그려요 김 대표. 그저 고마운 일이제, 우리가 뭐 대단한 일을 하는 건 아니랑께. 보은이여, 보은. 대통령님께 진 은혜를 갚는 것이제잉.”

 

다음날 아침. 오랜만에 늦잠을 자려고 작정하고 뒹굴거리는데 김 대표에게서 화포천 가자고 전화가 왔다. 난생 처음 본 사자바위 일몰에 감동한 이 소장에게 이번 기회에 그동안 못한 봉하 구경을 다 시켜주고 싶은 모양이다. 화포천은 노 대통령 귀향 이후 가장 많은 변화가 있던 곳 가운데 하나다. 쓰레기 천지에 사람들의 발길조차 끊겨있던 화포천이 지금은 인근에서 가장 자랑하는 아름다운 자연명소가 되었다. 화포천 복원은 봉하마을은 물론 인근지역 생태와 환경개선에도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곳곳에, 사람마다, 피어오르다

 

억새들이 장관을 이룬 산책길을 따라 걸었다. 철새들, 꽃들, 곳곳에 안내 표지판이 나타날 때마다 김 대표와 이 소장의 만담 같은 해설이 이어진다. 경치에 취하고, 이야기에 취해 두 시간여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다. 시계를 보니 국화분재 헌정식과 전시 오픈이 30분밖에 남지 않았다.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데 배수장 언덕에 자리한 자광사 지붕에 플래카드가 하나 펄럭이는 게 보인다. 커다랗고 간결하게 참 좋은 인연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이름 모를 어느 보살(菩薩)의 따뜻한 마음씀씀이가 참으로 고맙다.

 

다녔던 길을 따라 화포천에서 다시 봉화산을 지나고, 생태연못을 지나간다. 생가에 다다를 무렵 밀짚모자에 자전거를 탄 자원봉사자들 몇이 분주하게 오가는 게 보인다. 누구의 솜씨일까? 분재마다 노랗고 하얀 국화꽃이 다발처럼 피어오르고 있다. 봉하 추일서정에 커다란 느낌표 하나가 찍힌다. 참 좋은 인연, 가슴이 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