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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도종환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by 멀리있는 빛 2012. 4. 25.


「해인으로 가는 길」 이후 5년만이고, 첫 시집「고두미 마을에서」를 시작으로 이번이 열 번째 작품집이다.


그는 언젠가 작가를 꿈꾸는 어린 후배들에게 김수영 시인의 말을 빌려 ‘시는 온몸으로 온몸을 다해 밀고 가는 것’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문학과 이론으로 다져진 ‘이성의 머리’만으로도 아니고, 마음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정서’만으로도 아니고, 세련되고 민첩한 시인의 ‘손끝’만으로도 아닌, 이 모든 것이 합쳐진 ‘온몸’으로 혼신을 다해 삶을 밀고 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는 2007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소개되었던 동명의 시에서 따온 제목이다. 1985년 「실천문학」에서 <마늘 밭에서>로 등단했으니 올해로 그는 시인으로서 삶 27년째를 맞이했다.


도종환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시인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살아온 시간을 관조하듯 나지막한 음성으로 반추하고 있다.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서 그는 삶의 궤적을 시계 시침에 비유했는데, 치열했던 생의 열두시와 한시 그리고 벌레 먹은 자국이 많았던 이후의 시간을 지나 이제 ‘세시에서 여섯시 사이에’ 서있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세시에서 여섯시 사이’는 지난 날에 대한 후회나 ‘겨울’로 상징되는, 생의 끝으로 가는 두려움이 아니다. ‘해가 다 저물기 전 구름을 물들이는 찬란한 노을과 황홀을 한번은 허락하시리라는 생각만으로도 기쁜’, 시련과 고난을 묵묵히 이겨낸 자들에게 주어진 또 다른 희망과 그 설렘이다.


도종환 시인은 한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열심히 살고들 있지만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다”며 “인생 시간이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아직도’ 몇 시간이 남았다는 사실을 고맙게 생각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시를 제목으로 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세시와 다섯시 사이」에 담긴 모든 시들에는 마침표가 없다. 마치 각 시와 그 언어들이 길고 긴 띠가 되어 서로를 잇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종환의 ‘다섯시’ 이후에는 어떤 시들이 펼쳐질까? 시인의 초침과 분침이 ‘온몸으로 온몸을 밀어’ 써내려갈 삶의 다음 시간들이 기다려진다. 지금은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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