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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 - 놀기

DVD - 나쁜 감독 이창동, 그리고 <밀양>

by 멀리있는 빛 2007. 10. 16.
밀양 Secret Sunshine

▶감독 :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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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연 : 전도연, 송강호, 조영진, 김영재, 오만석

▶스페셜 피처 : 음성해설, 메이킹 필름, 예고편
                        감독 인터뷰, 삭제장면, 미니 다큐

  

언어 : 국어
자막  : 한글, 영어
사운드 : DD 5.1, DD 2.0
화면비 : 2.35:1 아나몰픽
디스크 : 2장, 듀얼 레이어
관람등급 : 15세 이상
상영시간 : 141분
출시 : 아트 서비스





이창동은 나쁘다. 해체된 가족, 잃어버린 미래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그린 <초록 물고기>는 당시 보기 드문 느와르의 묘미를 한국적 정서로 잘 풀어낸 수작이었다. 소설가 출신의 늦깎이 데뷔작이었으니 그 정도의 슬픔은 아름다운 여운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쁜 감독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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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 <박하사탕>이 개봉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세기말까지 거세된 역사의 중심에서 가해자이자 희생자로 불운한 생을 마친 남자 김영호 이야기. 아마 이 작품에서부터 이창동이 본색을 드러낸 것 같다. 슬픈 운명의 주인공치고는 너무나 파렴치한 그에게 나는 어떤 동정이나 비난도 내비칠 수 없었다. 그저 서럽고 또 서러워서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도 전에 극장을 뛰쳐나왔던 기억이 그를 미워하게 된 첫 시작이었다.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이면서 다분히 영화적인 그의 연출은 20세기를 그렇게 잔인하게 벗겨버렸다. 

그의 영화에는 가슴을 찢는 서러운 감동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게 만드는 나쁜(?) 힘이 있었다. 겨우 딱지가 생길만 하면 나도 모르게 상처를 긁어 덧나게 하던 어린 시절처럼, 힘들지만 다시 그의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박하사탕>으로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를 순회하던 이창동 감독의 마지막 코멘트는 “다음 영화는 즐겁고 따뜻한 사랑 영화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나고 <오아시스>가 나왔다. 이 시대의 트라우마이자 동시에 페르소나인 ‘영호와 순임’을 그는 다시 ‘종두와 공주’라는 이름으로 되살려냈다. 나는 그의 잔인한 사랑 이야기에 다시 한 번 울었다. 그때 알았다. 이창동은 <초록 물고기>, 아니 각본과 조감독을 맡았던 <그 섬에 가고 싶다>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때부터 아주 나쁜 감독이었다는 사실을.





좋은 감독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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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물고기>

그래서 나는 이창동이 좋다. 그의 이야기는 앨빈 토플러의 경제학 이론이나 대학 초년에 의무감으로 읽었던 그 어떤 미학책보다 재미있고 솔직하다. 그는 고통은 고통이고, 기쁨은 기쁨이며, 사랑은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수사는 사족이요,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 족쇄다. 나는 꾸미지 않는 그의 솔직함 속에서 종종 ‘너 자신에게만은 거짓말 하지 말라’는 애정 어린 충고를 듣는다. 그는 가르치지 않고 배우게 하고, 속삭이지 않고 느끼게 하는 참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그래서 그냥 “<밀양>은 이창동의 영화다”라고 한 마디만 하면 <밀양>에 대해 할 말은 다 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절망이고, 희망이고, 죽음이고, 삶이고, 그리고 사랑인 게 바로 이창동 영화기 때문이다. 전도연과 송강호의 열연으로 칸에서 한국 여배우 최초로 팡파르를 울리던 날, 역사적인 순간을 중계방송조차 하지 않는 방송사를 원망하며 밤잠을 설치며 인터넷을 뒤졌다. 상은 전도연이 탔지만, 나는 축하는 이창동에게 했다. 어느새 이창동을 짝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앞으로 ‘이빠’(이창동 빠돌이)로 불려도 좋을 것 같다는 기쁨이었다.





영화의 처절함 스페셜 피처로 위로 받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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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낯간지러운 사랑 고백을 해놓고 2만7천500원짜리 DVD 타이틀이 퀄리티가 이러쿵저러쿵 하다는 얘기를 하자니 좀 뻘쭘하다. 하지만 이 얘기를 빼먹으면 지면 자체의 의미가 사라질 테니 짧게 감상기를 적는다.

화질과 음질은 141분을 한 장의 디스크에 담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다. 멋도 없고 맛도 없는 게 이창동 영화의 영상이요, 사운드가 아니었던가. 그래도 예의 영화음악은 임팩트가 강한 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에 나왔던 <이창동 컬렉션> 세컨드 에디션 이후 작품해설에 물꼬를 튼 이창동 감독은 이번에도 음성해설에 참여했다. 음성해설은 영화평론가 이동진, 송강호, 전도연 등 감독, 평론가, 배우가 참여한 3색 버전과 김영진, 허문영이 참여한 평론가 버전 등 두 가지가 실렸다. 감독과 배우 중심의 자기고백적 내용들과 평론가들의 객관적 비평이 고루 어우러져 오랜만에 관객이 영화를 올곧게 풀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이런 잔인한 영화에 재미있는 해설을 기대하는 게 무리겠지만, 영화를 보고 곱씹을 만한 게 한두 가지쯤 있었던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얘기가 제법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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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말하면 잔소리, 전도연!


메이킹 필름은 전도연을 위한 것이다. 그가 어떻게 신애로 미쳐가는지, 칸의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전도욘~’을 외치게 되었는지 메이킹 필름이 낱낱이 보여준다. 영화 속 밀양 사람들의 실체(?)를 보여주는 ‘밀양 사람들’은 진짜인지 연기인지 헷갈리게 했던 조연 배우들의 속내와 숨은 이야기다. 이밖에 감독이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나무 그늘에 앉아 나누는 영화 대담 ‘공감’, 귀하게 유쾌한 전도연과 송강호의 ‘미니 다큐’ 등이 실렸다. <밀양>의 스페셜 피처는 본편을 보며 쪼그라들었던 가슴과 어깨를 활짝 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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