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遊 - 놀기

클로버필드 감상기. 그리고 괴물의 실체

by 멀리있는 빛 2008. 1. 17.

* 본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인용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으며, 본 이미지의 권리는 파라마운트 픽쳐스를 비롯한 각 영화사에 있습니다.


* 주의해서 쓴다고 썼지만,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영화를 보려 했던 분들은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클로버필드 Cloverfield



우연한 기회로 <클로버필드> 기자시사회를 다녀왔습니다.

실체가 분명치 않은 수상한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던 작년 어느 날부터,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그 정체를 드러낸 1월 15일 오후까지...얼마나 많은 기대와 의혹이 솟구쳤다 곤두박질쳤는지 셀 수 없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던 영화입니다.


처음에는 미국드라마 <로스트>로 '낚시 스토리 전개'의 최고봉이 된 악명(?) 높은 J.J. 에이브람스가 제작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기대치가 급상승했지만, 얼마 뒤 <언더 씨즈 2>(각본) <졸업>(1996, 연출)의 매튜 리브즈가 감독을 맡았다는 소식에 좌절했었습니다.(개인적으로 두 작품이 저에겐 영 아니올시였거든요.)

그러다 얼마전 극장과 인터넷, TV에서 나오는 예고편을 보고 뭔가 마이터리티 하면서 현장감 넘치는 분위기를 느껴 '필감상'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클로버필드>의 제작자인 J.J. 에이브람스는 <로스트>를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수준급의 낚시 실력에 비해 이야기를 너무 늘어뜨린다는 지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드라마입니다.



<클로버필드>는 저에게 최악의 실망과 최고의 만족을 동시에 안겨준 이상한(?) 작품입니다.

우선 그 첫번째 이유는 '헨드헬드' 촬영기법 때문입니다. <클로버필드>는 인터넷 시대 최초이자 최고의 후광을 받고(다 네티즌들 덕분이었죠 ^^) 순제작비 6만달러를 들여 1억5천만달러라는 초대박 흥행성적을 거둔 <블레어 위치, The Blair Witch Project>(1999)와 형식이 99.9% 똑같습니다.

<클로버필드>는 주인공의 손에 들린 카메라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관객의 눈동자가 쉴 틈을 조금도 주지 않습니다. 물론 그 덕분에 속이 뒤틀릴 정도의 생생한 긴장감을 만끽할 수 있죠. 영화가 시작되고 30분 정도 지나고 화면 흔들림에 눈이 조금씩 적응할 무렵이면 관객은 어느새 충격과 공포의 아수라장 한가운데 내던져진 영화속 인물들과 하나가 됩니다.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영화 속을 체험하는 듯한 신비한 기쁨이랄까요?(물론 유쾌하기만한 기쁨은 아닙니다만)

문제는 <블레어 위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마저 손사레를 칠 정도로 화면이 지나치게 흔들린다는 겁니다. 이 영화는 90% 이상이 캄캄한 밤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월미도 바이킹 위에서 덤블링 하는 것보다 더 어지럽고 정신 사납다고 보시면 됩니다.



 헨드헬드 기법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블레어 위치>



<블레어 위치> 못지 않게 극강으로 흔들어대는 <클로버필드>



게다가 제가 영화보기 전까지 내내  우려했던 일이(예고편이 캠코더로 찍힌 내용을 편집한 것이었죠) 사실이었다는 점입니다(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부분은 알고 극장을 찾는 게 더 나을거라 생각합니다). 영화 본편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 100% 캠코더 영상입니다. 가정용 캠코더로 동영상을 찍어보신 분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명확하게 이해하실 겁니다. 영화가 끝난 뒤 한 친구는 "우리가 본게 <클로버필드> 캠버전이야? 극장판은 따로 개봉하나?" 하는 농담까지 했습니다.  저도 내심 '언제쯤 매끈한 화면으로 전환될까' 기다렸지만 결국 그렇게 끝이 나고 말더군요. 물론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영화적인 느낌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위의 사진보다는 낫지만 더한 화질의 장면도 여러번 나옵니다.


두번째는 침침한 화면에 어지럽게 흔들리는 화면, 여기에 더해진 '낚시질 영상'입니다. <클로버필드>는 영화 내내 '괴물'의 정체를 단 한번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무너지는 빌딩 속에 엉덩이와 팔꿈치 한번, 미사일의 화염 속에 언뜻 비치는 뒤태와 뒷다리 한번...영화 내내 이런식이다보니 궁금증이 쌓일대로 쌓이다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딱 한번, 전신은 아니지만 괴물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치 관객이 괴물의 정체가 궁금해 숨이 넘어가기를 기다린 것처럼 감추고 감추다가 보여주기 때문에 갑자기 이상한 나라로 떨어진 듯한 묘한 공포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도심 한복판을 통쾌하게(?) 나동그라져 구르는 자유의 여신상 머리.

이야기도 이만큼 통쾌했다면?


마지막으로 <클로버필드>의 이야기에는 기승전결이 없습니다. 서론도, 결론도 없이 본론에서 시작해 본론에서 끝이납니다. 화질도 안좋지, 내내 흔들리지, 서론과 결론도 없지....그렇다고 익숙한 배우가 한 명이라도 나오나? 그것도 아니니 설상가상도 이만한 영화가 어디 흔하겠습니까?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살펴본 관객들의 반응은 '영 찝찝해'가 반 이상이었습니다. 네. 지금까지 말한 것처럼 그럴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춘 영화죠. 스케일 큰 블럭버스터를 기대했다면 실망은 몇배로 커질 것입니다. 저 역시 위에 적은 이유들 때문에 기대 이상의 실망을 돌려받았습니다. 극장을 나설 때까지는 말이죠.


그런데 집에 와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점점 생각이 달라집니다. 아까 극장에서 느꼈던, 혼돈의 한가운데 내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점점 더 뚜렷해지는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무슨 신앙간증이라도 하는 듯하네요..^^;) 굉장히 무섭고 스릴 넘치는 꿈을 꾸다가 엄마의 잔소리에 잠을 깼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습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왠지 다시 한번 그 꿈속으로 돌아가보고 싶은 강한 욕구를 느꼈다고 할까요?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그런 느낌이 가시질 않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클로버필드>는 최악의 실망과 최고의 만족을 동시에 안겨준 영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확신하는 것은 보는 사람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느낌을 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공 세명의 공포에 찌든 모습이군요.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클로버필드>의 국내개봉일이 다음주 목요일(24일)이라고 하더군요. 그때쯤이면 바쁜 일도 좀 정리가 될 것 같아 다시 한번 극장을 찾을 생각입니다. 두번째는 어떤 느낌일지 또 다시 기대가 됩니다.




 

 


추천




마우스 스크롤을 화면 제일 밑으로 쭉~내리면 제가 그린 '괴물'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돌아와서 기억나는 부분들을 조합해서 그린 것이라
실제 괴물 모습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비슷하다면 스포일러가 되는 것이니 문제네요)
잘 그린 그림도 아니고, 명확하지도 않으니 가볍게 보고 넘기실 분은 보시고,
그렇지 않으신 분들은 그냥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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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니 영화에 쓰인 음악 중에 'The Underdog'이라는 곡이 있더군요.

괴물을 지칭하는 말인거 같은데 확실하진 않습니다.

제가 본 괴물의 생김새는 '메뚜기+고질라+개구리+골룸'이었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궁금하네요.


주의 : 그림은 실물과 99%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