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와 관객들이 흔히 거장이라 칭송하는 감독들의 대표작에는 김진규의 이름이 곧잘 등장한다. 홍성기의 59년작 <청춘극장>, 정창화의 <장희빈>, 유현목의 <오발탄> <잉여인간> <순교자>, 신상옥의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 김기영의 <하녀> <고려장> <렌의 애가>, 이만희의 <삼포가는 길>까지 거장들의 영화에 새겨진 김진규의 이름은 한국영화계에서 그가 얼마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으며 다양한 연기의 폭을 가진 배우였음을 증명한다.
조선연예주식회사의 연구생으로 들어간 김진규는 스무살 때부터 노래와 연기를 시작해 해방 전후 10여 년 간 무대생활을 했다. 영화가 아직 대중적으로 크게 어필하지 못하고 악극단의 공연 문화가 성황을 이루던 시기, 김진규는 동양극장에서 공연된 <살구꽃>이라는 작품으로 그의 연기 인생에 첫 발을 내딛고 해방 이후 배우 장동휘와 함께 극단을 설립하는 등 연극 배우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천의 얼굴 속의 리얼리티
벙어리 삼룡이
인간의 고뇌를 안은 스크린의 신사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던 1960년대는 비교적 안정된 자본과 체계적인 제작 시스템이 이뤄져 영화의 제작 편수도 1년에 200여 편까지 이르던 전성기였다. 스크린도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변화하고 영화계의 흐름이 반공에서 문예영화로 이어지면서 예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고 촬영과 음악에도 높은 비중을 두어 외국의 대작 영화들에 관심을 쏠려있던 젊은 관객들과 지식인들의 눈이 한국영화로 옮겨지게 됐다.
삼포가는길
신상옥 감독의 61년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김진규는 친구의 아내인 옥희 어머니를 사랑하게 되지만 마음 한번 제대로 전하지 못하고 떠나는 과묵하고 소심한 신사로 나온다. 이 작품에서 김진규가 보여준 정적인 내면 연기는 이전의 작품에서 넘지 못했던 과장된 연기를 털어 내고 새롭게 거듭났다는 평을 들었다.
섬세한 표정과 눈빛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할 줄 아는 김진규는 유현목의 <오발탄> 신상옥의 <벙어리 삼용이> 등 걸작 영화들과 만나면서 점점 깊이를 더해 갔다. 특히 병든 사회와 뒤엉킨 운명 속에서 신음하는 <오발탄>의 송철호와 인생의 막장에 접어들어 갈 곳을 잃고 방황하던 <삼포 가는 길>의 정씨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배우 김진규를 쉽게 잊지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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