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오리쌀이냐?
농민들은 30퍼센트 쌀값을 더 받습니다. 왜냐하면 오리 사와서 뭐 하고 뭐하고 일손이 훨씬 많이 들지요. 농약 쳐버리는 거보다 일손도 많이 들고, 또 올해는 농사가 잘 됐습니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병이 나도 농약을 못 치니까 까딱 잘못하면은 농사 망치는 수가 있습니다. 위험 부담이 있고 일손도 많이 들고 그러니까 안 할라 그래요 30퍼센트를 더 준다 해도 잘 안 할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정사정해가지고 그렇게 하기로 했죠.
올해 농사 잘 지었습니다. 장마가 길지도 않고 날씨도 덥고 건조해서 나락이 엄청 잘됐어요. 일반 벼, 일반 관행 농법으로 한 보통 벼가 한 7퍼센트 증산이 됐고 오리 농사는 6퍼센트 증산이 됐으니까. 뭐 통계상의 오차 포함하면 똑같이 돼 버렸습니다. 똑같이 돼 버렸으니까 완전히 재미 본 거지요. 근데 시세의 30퍼센트를 더 받는다, 이게 농민들의 뜻입니다.
농민들은 30퍼센트를 더 받고 싶어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꿈이 뭐냐? 땅이 좀 살아나면 좋겠다는 겁니다. 우리 눈에는 생태계가 전부, 산이 푸르니까 푸른가보다, 들이 푸르니까 푸른가 보다, 물이 흐르니까 흐르는가 보다 하지만 지난날하고 빅해 보면 우리나라 논이 굉장히 빈약합니다. 생태계의 다양성이 아주 빈약합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 살던 눈에 보이는 많은 벌레들이나 물고기들이 지금은 자취를 감추어버렸거나 씨가 말라버렸거나 등이 휘었거나 아주 독한 놈만 살아남았거나 그렇게 돼 있죠. 논두렁에 가도 옛날에 기어 다니던 많은 벌레들이 다 없어져버리고, 물벌레도 옛날에 있던 방개, 가재, 소금쟁이, 물거미 뭐 이루 이름을 다 외울 수 없는 많은 물벌레들이 요즘은 없거든요. 없습니다.
옛날에는 어쨌느냐 하면 여름에 물을 한 그릇 떠다가 마루에 놔두고 아침에 와 보면 그 물그릇 안에 온갖 물벌레들이 날아와 가지고 헤엄치고 놀았어요. 그만큼 많았죠. 이제 그게 다 죽어버렸는데 그게 죽고 땅에 있던 미생물이 죽고, 그러다 보니까 땅이 점차 식어 간다 또는 죽어 간다 이러는 겁니다. 단순히 농약이 검출되는 문제가 아니고 죽은 땅에서 나온 쌀이 문제다, 죽은 땅에서 나온 쌀이라서 생명력이 떨어진다, 이게 문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땅을 되살려서 생명력이 있는 땅에서 쌀을 생산해 보자. 요새는 농약 기술이 좋아가지고요, 농약을 쳐도 농약이 잔류하지 않습니다. 추수에 임박해서 아주 운 나쁘게 멸구가 오거나 병이 와 가지고 그때 약을 치면 잔류하는데 그것도 현미를 싹 갈아 내버리고 나면 농약이 거의 잔류되지 않습니다. 농약 없는 쌀이 좋은 쌀이다, 이거는 이미 이제 얼추 지난날 얘기가 됐습니다. 농약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 또는 적합 판정을 받았다는 것으로는 좋은 쌀이다 이래 말하기 어렵다는 거죠.
살아 있는 땅에서 생산된 쌀이라야 그게 좋은 쌀입니다. 그것을 영양이 풍부하다, 또는 좀 살아 있는 땅에서 난 쌀이다 해서 유기농 쌀이라고 해요. 유기농 쌀. 그래서 올해 우리가 지은 건 저농약 수준으로밖에 안 넣어주지요. 그다음에 두 해 세 해 넘어가고 4년5년 지나서 땅이 살아나면 메뚜기가 푸르륵 날아서 도망가는 그런 상황을 맞게 되죠. 그래 될 때 이게 유기농 쌀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약을 안 치는 것 말고 이제 몇 가지 퇴비를 더 넣어야 되고 지력을 살리는 작업을 함께해 나가야 됩니다.
유기농 쌀이 되면 농민들한테는 30퍼센트만 더 주는 것이 아니고 50, 70, 80 뭐 100퍼센트 더 주더라도 먹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그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우리가 저농약, 무농약, 그 다음에 유기농 이렇게 가려고 하거든요?
엊그제 제가 ‘슬로 시티’라는 어떤 팸플릿을 하나 봤는데, 그건 뭐냐 하면 느리게 살자, 느리게 살고 가늘게 살자는 겁니다. 슬로 시티의 핵심 가운데 하나는 인스턴트 푸드가 아니고 천천히 만든 음식을 먹자는 게 있습니다. 요새 음식을 그냥 벼락치기로 먹지 않습니까, 그죠? 천천히 먹는다는 게 뭡니까? 그건 주로 발효했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살아 있는 땅에서 자연의 원리에 따라서 생산하고 자연의 원리로서 가공하고 그래서 천천히 오랜 시간이 걸려서 숙성딘 음식을 먹자, 이것도 핵심 내용에 들어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말하기를 유기농 수준으로 넘어서 초유기농으로 가자, 이렇게 얘기해요. 초유기농이라는 것은 유기 농법으로 지은 농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생태의 이치, 자연 운행의 이치에 따라 생산하고 가공되는 것을 얘기하죠.
참 좋습니다. 좋은데, 저는 진짜 복국집, 할매 복국집, 진짜 할매 복국집, 그 옆에 원조 진짜 할매 복국집, 뭐 이러는 거 같아서 기분이 좀 안 좋습니다. 초유기농 그러지 말고 그냥 생태농이라고 하자. 저는 이 논이 그냥 농사짓는 데 적합한 땅으로 살아나는 수준이 아니라 이 논과 논을 둘러싸고 있는 도랑, 논두렁, 그다음에 여기 둑, 산, 이 전체의 환경이 생태적으로 깨끗하고 풍부해지면 거기서 나온 모든 식물들은 생명의 기가 충만한 거 아니겠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과학적으로 분석이 될란지 안 될란지 모르지만 사람은 오감으로 경험해서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생명을, 기가 넘치는 쌀을 지어서 아이들한테 먹이면 아토피도 안 오고, 그죠?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그죠? 말썽도 많이 부리고 튼튼하고. (웃음)
그래서 그런 생태계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농민들의 목표는 더 받는 거고. 저의 목표는 이 생태계를 그렇게 아름답게 만들어 놓는 거다. 그다음엔 뭐할 거냐? 우리 자라나는 아이들이 그 생태계에서 자연을 좀 더 다양하게 학습하면서 자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똑같은 자연이지만 자연이 좀 더 풍부하고 다양하면 좋지 않겠느냐, 그리 생각합니다.
- 2008년 10월 26일 노무현 대통령 방문객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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