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39 보따리 쌈짓돈 할머니가끔 어딘가 당신도 모르는 곳에 마음 흘리고딴 사람 되어 돌아오시네귀신처럼 기척 없이신발도 벗지 않고 현관마루에 걸터앉아신세를 돌아보시나 지나는 행인들의 걸음을 세시나자글자글 깊어진 주름살만 씰룩씰룩할머니, 들어오시쟎고 뭐하세요내 말에는 대꾸도 없이 한 손으로 허공만 훠이그리곤 보따리 하나를 털썩 내미시는게지"다른 사람들한틴 말하면 안뒤야"보따리가 화수분이냐 할머니 참 담은 것도 많아저것은 어릴적 장판 밑에서 발견했던그 곰팡이 냄새나는 쌈짓돈인가도 싶네아버지가 드린 용돈얼마나 몇 년이나 모아오셨나누군가 버리고 간 종이박스와거리에 널부러진 빈병 모으러동네 곳곳 탑돌이도 열심이셨지내 나이쯤 돼 뵈는 저 누더기 황색봉투는 젊었던 아버지의 것이었겠지서툴지만 꼼꼼한 셈으로할머니 쌈짓돈은 그렇게 불어갔네주름살.. 2014. 3. 16. 마법의 비누 휴일에도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다보니어쩌다 어디 안가고 방콕하는 날은밀린 잠을 잔다든지, 영화를 보든지, 책을 읽든지‘감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자 시도하지만그저 아이들을 피해 이 방 저 방으로 도망을 다니거나반대로 아이들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집안정리로 하루를 다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아빠와 몸을 뭉게며 놀고 싶어하는데그게 생각만큼 잘 안된단 말이죠..^^:그래도 맏이라고 철이 제법 든 윤서는아빠가 피곤할까봐 조심조심 신경을 쓰는 게 보여서미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며칠 전에도 그런 휴일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윤서가분홍색 카드와 비닐에 쌓인 수제비누 하나를 건네는 게 아닙니까.삐뚤빼뚤하지만 빼곡하게 꼭꼭 힘을 주어 쓴 내용은 이렇습니다. “아빠에게안녕하세요? 아빠? 저.. 2014. 3. 11. 봉하밥상 봉하쌀 백미와 현미를 알맞게 섞어 지은 밥에무생채, 숙주나물, 달걀반숙프라이 옹기종기 넣고 봉하매실찹쌀고추장이 빨갛게 중심을 잡으면전북완주군 봉동읍 제내리에 사시는 마음 좋은 윤서 외할머니직접 키운 참깨로 만들어주신 장모님표 참기름도 한 스픈 쪼르르~그다음은 CM송 그대로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도 비벼줘야지. 지난겨울 방앗간 마당서 함께 담근 봉하김장김치에덤으로 멸치와 오징어와 돌김이고소하고 매콤하고 살뜰하게 어울린 마른반찬도 랑데뷰 아재님 안주인이신 ‘삭삭’님의 들기름 넣어 달달 볶은 미역에쇠고기도, 홍합도, 바지락도 없이 봉하 국간장으로만 간을 한 미역국은오늘 밥상의 화룡점정 아니런가. 한 손에는 적당히 매운 고추에 쌈장 콕 찍어 바르고다른 한 손은 윤기가 좌르르 나는 비빔밥을 크게 한 수저 퍼든.. 2014. 3. 11. 무제 청계천에서 이명박 박근혜 이름 부르고창신동 달동네 지인의 집에 들렀더니 오후 내내 우리를 기다리며 뜨겁게 가마솥을 헤엄치던 닭들이 백숙에서, 닭죽이었다가, 닭즙이 되어 있었습니다 뼛속까지 뜨거웠던 우리들의 저녁상 소주 몇잔이 반찬이 되고 담배 몇 개피가 숭늉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서울이 통째로 내려다 보이는 지인의 집 담도 없이 널디너른 마당에 서서 마치 보름달이라도 되려는 양 캄캄한 도시를 내려다 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다시 청계천 부근을 지나가는데 전태일의 젊은 시절로 우회하자며지인이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평화시장을 평화롭게 거닐고 점잖게 배웅하던 전태일과 악수하며 돌아서는데 거기서 마침내 만났습니다 종일토록 뜨겁게 내 가슴 속을 헤엄치던 그 마음이 거기 박석이 되어 있었습니다 2014. 3. 11.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8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