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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밀짚모자

by 멀리있는 빛 2015. 6. 1.

밀짚모자

지난해 가을걷이 중에

"옛다!" 하는 봉하 인심이 내게 씌워준 밀짚모자

요사이 내 못간 동안

누구의 이마와 손을 거쳤는지

엊그제는 봉하 생태연못 한 쪽에

덩그러니 혼자 가부좌를 틀고 앉았더라는 소식이 왔네

내 머리 속엔 금세

정겹고 낯익은 용의자들의 얼굴로

뱅글뱅글 사발통문이 돌았는데

그래 너는 내 없는 뜨거운 오후

개똥이의 그늘이었거나

소똥이의 손부채였거나

말똥이의 큰 눈에

성글성글 맺힌 그리움이 되어

오월 봉하의 햇살을

맨 앞에서 독대하고 있었을 테지

그 옛날 어느 매서운 겨울밤

새봄 내일을 화톳불 삼아

손이 부르트게 새끼를 꼬던

가난한 마음이 되어서 말이지

밀짚모자는 눈 내리는 겨울에 만드는 거라며

지난해 가을걷이 중에

"옛다!" 하며 내게 밀짚모자를 씌워준

그님들처럼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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