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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봉하 바보들, 여섯 번째 산을 옮기다

by 멀리있는 빛 2015. 6. 17.

6월 14일(일) 봉하 들녘에서 친환경생태농업 8년차의 힘찬 출발을 알리는 ‘2015 노짱 캐릭터논 모내기와 오리입식’ 행사가 있었습니다. 캐릭터논 모내기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봉하의 일꾼들이 ‘대통령의 유지를 우리가 이어가자’며 뜻을 모아 시작한 일입니다. 2010년 ‘사람사는세상’을 새긴 것을 시작으로 벌써 여섯 번째를 맞이합니다.


올해의 주제는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로 선정했습니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자 캠프 선거 슬로건이자, 그해 12월 30일 노무현 당선자가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별관에서 인수위 현판식을 갖고 내건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실시한 ‘2015 노짱 캐릭터논 시안 공모’에서 회원 여러분이 가장 많이 추천한 글귀 역시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대통령과 정부가 불통과 독선으로 국민 위에 군림하며 민주주의마저 생사의 기로에 몰아넣고 있는 지금, ‘국민이 대통령입니다’야말로 국민과 시대의 요청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문구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보들, 산을 옮기다’…14일(일) 새벽 5시부터 자원봉사자 등 55명 구슬땀


봉하 친환경생태농업 8년이 수많은 시련과 극복의 역사였던 것처럼, 캐릭터논의 역사 또한 그리 녹록치만은 않았습니다. 수천 평에 달하는 너른 땅 위에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과 대가(大家)의 일필휘지를 새겨 넣는다는 것, 그것도 생명을 가진 ‘벼’로 형상화하는 건 생각보다 많은 시행착오와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입니다. 게다가 그걸 도맡는 사람들이 청와대 출신의 초보농군들과 자원봉사자들이었으니 주위의 걱정과 만류가 이만저만 아닌 것도 당연했지요. 그러나 갖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머리와 가슴을 모은 덕분에 노짱 캐릭터는 가을 봉하들녘의 상징이 되어 해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봉하 방문객들에게 감동의 큰 선물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 노짱 캐릭터논 작업은 다른 이유로 시작부터 고초가 많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를 새길 논의 상태였습니다. 4년여 간 수련과 미꾸라지 양식 등을 위해 논습지로 가꾸어온 곳이라 여기저기 물이 깊은 둠벙이 포진해 있고, 자연 발아된 부들(개울가에 자라는 1~1.5m 크기의 풀)이 무성하게 숲을 이뤄 벼농사에 맞게 다시 땅을 다지는 일이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5월에는 내내 로터리(써레질) 작업을 하느라 포클레인과 트랙터, 지게차를 총동원을 해야 했고, 수렁에 빠진 농기계를 끌어 올리는 일이 많게는 하루에 열두 번이 넘게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의지란 참 놀랍습니다. 우공이산, 노공이산의 정신일까요? 봉하 농군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모아 행사 직전까지 써레질과 못줄치기, 스케치(자색벼를 심어 글자와 그림의 테두리를 그리는 작업)에 혼신을 기울인 덕분에 14일에는 캐리터논 모내기를 무사히 치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는 마을 부녀회와 영농법인(주)봉하마을,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봉하 작목반원들까지 힘을 보태 어느 해보다 열기가 뜨겁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했습니다. 새벽 5시에 시작된 모내기는 캐릭터논 1,200평과 오리 논 1,500평에 채색(일반벼와 자색벼로 글자와 그림의 색을 채워 심는 것)과 보식(잘 못 심어졌거나 빼먹어 생긴 빈틈을 메워 심는 것)을 거듭한 끝에 오전 8시에 일단락되었습니다. 이후 두 달 정도는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는 길고 고된 보식작업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날 봉하 일꾼들의 입가에는 즐거운 미소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전남 장성의 ‘오리 농군’ 봉하 입성…벼와 함께 성장하며 두 달간 ‘친환경 지킴이’ 활약


오전 11시에는 오리농군들의 봉하 입성을 알리는 ‘오리입식’ 행사가 이어졌습니다. 주형로 홍성환경농업마을 대표, 김경수 전 봉하사업본부장, 김정호 영농법인(주)봉하마을 대표, 자원봉사자, 생태학습체험단 어린이 등 130여 명과 전남 장성에서 막 이주해온 오리 농군 150마리가 유쾌한 첫 만남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오리들은 캐릭터논에 모내기한 어린 벼들과 출생-성장의 시기를 같이 하는 ‘동갑내기’입니다. 오리의 부화와 볍씨를 파종해 모내기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약 28일에서 30일로 둘다 같기 때문입니다. 7월말에서 8월초 오리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고 들녘을 떠나기까지 약 두 달 동안 이 둘은 생명의 동반자이자 수호자 역할을 주고받을 것입니다. 


오리는 이날 캐릭터논에 동반 입성한 논우렁이와 더불어 봉하 친환경생태농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논 곳곳을 헤엄치며 흙탕물을 일으켜 잡초가 자라는 것을 막고, 해충을 잡아먹어 벼가 건강하게 자라게 돕습니다. 오리의 배설물은 자연스럽게 논에 고루 스며들어 거름이 됩니다. ‘농군’이란 칭호가 그렇게 허투루 얻어진 게 아니랍니다.



봉하, 생명과 나눔의 공동체


노짱 캐릭터논 모내기는 매년 초여름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전국의 회원들이 봉하에 모여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과 정신을 들녘에 되새기는 일입니다. 봉하의 친환경생태농업은 맛좋고 영양 많은 쌀을 생산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하며 더불어 사는 ‘생명과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모두가 함께 써내려가는 봉하 친환경생태농업의 여덟 번째 이야기가 희망차게 시작되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봉하들녘과 사람사는 세상 회원들 가슴 속에 ‘희망의 대풍(大豊)’이 깃들길 기원하며, 묵묵하게 봉하를 지키며 대통령의 뜻을 실천해가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끝으로 노짱 캐릭터논 모내기가 있던 지난 주말 봉하의 풍경을 영상으로 소개합니다. 




봉하 전문 사진가 '문고리'님 제작 

<2015 노짱 캐릭터논 모내기 및 오리입식 행사> 영상보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68853015&rte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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