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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 - 살기

우리집 거실에 욕지도 바다소리가 들린다

by 멀리있는 빛 2018. 1. 28.













1. 인복이 많아 언제봐도 좋은 벗들이 주변에 많은 편이다. 얼마 전 그런 선배들과 통영 욕지도에 다녀왔다. 

무념무상, 각지에서 서로 바삐 지내다 일년에 한두번 이렇게 모여 세상의 피로와 때를 씻곤 했다. 

나는 낚시를 아주 좋아하지만, 실력은 해도해도 젬병이라 선배들이 낚은 걸 거저 얻어먹을 때가 더 많다.


2. 어느새 1월 마지막 주말. 봉하에 가니 뽈락 수십마리가 냉장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욕지도 갔을 때, 일정 때문에 나는 몇시간 먼저 섬을 나와야 했다. 

그런데 그새 선배들이 막내인 나를 위해 정성스레 손질까지 해놓고 맡기고 간 것이다. 

애 다섯 키우느라 고생한다고 매번 바리바리 챙겨주는 선배들. 

이냥반들 이날도 빈손으로 귀가 했을 게 뻔했다.


3. 뽈락 먹일 생각에 평소보다 이른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저녁밥상에 뽈락구이가 횡대로 누웠다. 

큰애와 둘째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마리 마리 손에 뽈락을 들고 뜯고, 

돌 지난 막내에게는 엄마가 살금살금 뼈를 발라 밥알 위에 얹어 먹였다.


4. 작년엔가 재작년엔가 선배들과 욕지도에 낚시를 갔다가 섬을 나오는 길에 

그곳 명물 ‘할매 바리스타’에 들른 적이 있다. 

섬을 나가면 곧바로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었다. 

너무나 아쉬웠다. 언제 또 오나....

마침 한쪽에 거기 다녀간 사람들이 저마다의 사연과 기념글을 적어 놓은 게 보였다. 

'나도 몇글자 남겨야겠다' 잠시 고민하고 앉았다가 

우리만 알아볼 단어 몇 개를 장난처럼 길게 써놓고 섬을 나왔다.


5. 옛날에 어느 노승(老僧)이 시자승(侍者僧)을 데리고 연화도의 상봉(上峰)에 올랐다. 시자승이 “스님! 어떠한 것이 도(道)입니까?”라고 물었다. 
노승은 섬 하나를 가리키며 “욕지도관세존도(慾知島觀世尊島)”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이 섬 이름이 '욕지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아이들이 뽈락구이를 하도 맛나게 먹길래 사진을 몇컷 찍었다. 

둘째 현서가 물었다. “아빠 욕지도가 어디에요? 다음엔 나도 데려가지....”
“어..저기 남쪽 바다에 아주 좋은 그런 데가 있어...”
나는 지나가는 말로 답하고는 끝에 이렇게 못을 박았다. 
“그렇지만 너희는 안 데리고 갈 거지롱~”
오랜만에 집에서 바다소리가 들린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고마운 형님들께...